퇴사 롤링페이퍼와는 무게가 다릅니다
이직하는 동료에게 쓰는 송별 롤링페이퍼는 가볍게 농담을 섞어도 괜찮습니다. 정년퇴임은 다릅니다. 한 사람이 이십 년, 삼십 년을 한곳에 바쳤고, 그 시간을 마무리하는 자리입니다. 글 한 줄에도 격식이 필요하고, 참여하는 사람의 폭도 훨씬 넓습니다.
그래서 준비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합니다. 퇴임식 일주일 전에 만들면 지금 같은 팀에 있는 사람만 씁니다. 최소 3주, 가능하면 한 달 전에 시작하세요.
전·현직 동료를 두루 모으는 법
정년퇴임 롤링페이퍼의 가치는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전에 함께했던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십 년 전 그분 밑에서 일하다 다른 부서로 간 사람, 먼저 퇴직한 동기, 그분이 신입 때 가르쳤던 직원이 지금은 다른 회사 부장이 된 경우. 이런 분들의 글이 당사자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줍니다.
- 연락망부터 정리하세요. 롤링페이퍼를 만들기 전에, 그분과 인연이 있는 사람 목록을 먼저 적습니다. 인사 기록을 아는 선배 한 분, 그분과 가장 오래 일한 동료 한 분에게 물어보면 빠르게 채워집니다.
- 부서별·시기별로 한 사람씩 전달책을 두세요.주최자 혼자 스무 명에게 개별 연락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업 쪽은 김 과장님이, 퇴직한 선배들은 박 부장님이” 식으로 나누면 사흘이면 링크가 다 돕니다.
- 현직 직원은 마지막에 돌리세요.먼저 외부 분들 글이 몇 장 붙은 뒤에 사내에 공유하면 “이 정도 자리구나” 하고 다들 정성껏 씁니다.
연령대가 높은 참여자를 위한 안내
퇴직한 선배나 거래처 어른께 링크를 보낼 때는 “앱 깔아야 하나”, “가입해야 하나” 하는 부담을 먼저 덜어 드려야 합니다. 이 서비스는 링크를 누르면 바로 쓰는 화면이 열리고, 회원가입도 설치도 없습니다. 링크와 함께 이렇게 한 줄 붙여 보내세요.
“링크 누르시면 바로 글 쓰는 칸이 나옵니다. 가입이나 설치는 없고, 이름 칸에 성함과 소속을 적어 주시면 됩니다.”
이름 칸에는 소속이나 기수, 함께 일한 시기를 같이 적도록 권하세요. “이정호 (95년 입사 동기)”, “최은영 (2008~2012 기획팀)” 처럼요. 삼십 년 동안 스쳐 간 사람이 수백 명이라 이름만으로는 당사자도 누구인지 바로 떠올리지 못합니다.
글꼴과 형태는 단정하게
글꼴은 열 가지 중 고를 수 있는데, 이 자리에는 단정한 고딕이 어울립니다. 귀여운 손글씨체는 생일에는 좋지만 퇴임사 옆에 놓이면 가벼워 보입니다. 주최자가 첫 글을 단정한 글꼴로 써 두면 뒤따르는 사람들도 비슷하게 맞춥니다.
형태는 리스트형을 진지하게 고려하세요. 메시지가 위에서 아래로 차례로 쌓여 읽기 편하고, 긴 글이 잘리지 않습니다. 퇴임 롤링페이퍼는 한 사람이 열 줄 넘게 쓰는 경우가 많고, 당사자도 화려한 것보다 찬찬히 읽을 수 있는 쪽을 더 좋아합니다. 인원이 스무 명을 넘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캔버스형으로 만들었다면 완성본을 인화해 액자로 드리는 것을 권합니다.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은 한 장은 서재에 걸어 둘 만한 모양이 나옵니다. 사이즈와 해상도 고르는 요령은 출력·인화하기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퇴임식에서 전달하는 방법
퇴임식 순서 중에 롤링페이퍼 화면을 띄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프로젝터에 링크를 열어 두고 사회자가 몇 장을 골라 읽으면, 꽃다발 전달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먼저 퇴직한 선배나 멀리 있는 옛 팀원의 글을 읽을 때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과 별개로, 손에 쥐여 드릴 것을 꼭 준비하세요. 이미지로 저장해 인화한 액자가 가장 무난합니다. 퇴임하시는 분은 집에 가셔서 다시 보고 싶어 하시는데, 링크를 기억해 두셨다가 찾아 들어오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정년퇴임·은퇴 축하 문구 예시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 줄로 끝내면 아쉽습니다. 그분에게 배운 것 하나, 함께 겪은 일 하나를 구체적으로 적으면 그 글만 다르게 읽힙니다.
직속 후배로 일했던 사람
- 신입 때 보고서 들고 가면 빨간 펜으로 다 고쳐 주시던 게 그때는 무서웠는데, 지금 제가 후배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부장님께 배운 대로 하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 힘들 때마다 “일은 일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하시던 말씀, 회사 생활 내내 붙들고 왔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뵙겠습니다.
- 십오 년 전 제가 큰 실수 했을 때 위에서 대신 혼나 주신 거, 한 번도 제대로 감사하다고 못 했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입사 동기
- 같이 입사해서 같은 날 나가는 줄 알았는데 네가 먼저 가네. 나도 곧 따라간다. 먼저 가서 뭐가 재밌는지 알아봐 둬라.
- 삼십 년 전 연수원에서 밤새 술 마시던 게 엊그제 같다. 그때 한 약속대로 퇴직하면 같이 낚시 가자. 이번엔 네가 배 빌려라.
부하 직원이었던 사람
- 팀장님 밑에서 일한 삼 년이 제 회사 생활에서 가장 많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가르쳐 주신 대로 지금도 회의 전에 숫자부터 확인합니다. 퇴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제가 육아휴직 쓴다고 했을 때 아무 말 없이 결재해 주셨던 것,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팀장님 시간을 사십시오.
타 부서·거래처
- 부서가 달라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회의에서 늘 상대 입장을 먼저 물어보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랜 근속 축하드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십 년 넘게 거래하면서 한 번도 말 바꾸신 적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저희도 편하게 일했습니다. 퇴임 후에도 가끔 뵙고 싶습니다.
가족
- 아빠, 매일 새벽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는 뒷모습만 보고 자랐어. 이제는 앞모습 보면서 살자. 고생 많았어. 진짜로.
- 여보,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은 거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이제 늦잠 자도 아무도 뭐라 안 해요. 수고했어요.
이런 점은 주의하세요
- 회사 기밀과 내부 이야기는 쓰지 마세요.이 롤링페이퍼는 링크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프로젝트명, 거래처 이름, 인사 문제, 사내에서만 통하는 사건은 적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때 그 일” 정도로만 써도 당사자는 압니다.
- 당사자가 계신 단체방을 조심하세요. 부서 단톡방, 동기 모임 방에는 대개 퇴임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깜짝 전달이 목적이라면 별도 방을 만들거나 개별 메시지로 링크를 보내세요.
- 글은 같은 기기, 같은 브라우저에서만 수정됩니다. 나이 드신 분께 이 점을 미리 알려 드리세요. 회사 컴퓨터로 쓴 글을 집 휴대폰에서 고치려다 못 고쳐 당황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 저장은 필수입니다. 이 롤링페이퍼는 누군가의 수십 년을 마무리하는 물건입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무료 서비스라 영구 보관을 장담하지 못하니, 퇴임식 전에 주최자가 이미지로 저장해 두고 당사자께도 파일로 전해 드리세요. 링크만 드리고 끝내면 언젠가 후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