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는 말보다 글이 쉽습니다
부모님께 “고마워”를 얼굴 보고 말하는 집은 드뭅니다. 전화로는 더 어렵고, 명절에 모여도 결국 밥 얘기만 하다 헤어집니다. 그런데 글로는 씁니다. 특히 남들도 같이 쓰는 한 장에는 더 씁니다.
게다가 가족은 흩어져 삽니다. 서울과 부산, 해외에 사는 형제까지 한자리에 모으기는 어렵지만 링크 하나는 어디든 갑니다. 각자 자기 시간에 쓰고, 부모님은 한 장을 받으시면 됩니다.
가족을 모으는 순서
- 형제자매 중 한 명이 만듭니다.보통 부모님 근처에 사는 사람이나 평소 연락을 맡는 사람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름은 “엄마 생신 축하해요” 나 “아버지 칠순” 처럼 지으면 됩니다.
- 부모님이 안 계신 방에 링크를 올립니다. 가족 단톡방에는 대개 부모님이 계십니다. 형제자매끼리 쓰는 방이 없으면 이참에 하나 만드세요. 이후에도 두고두고 쓰입니다.
- 사위·며느리·손주까지 넣습니다. 형제자매가 각자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링크를 넘기면 됩니다. 사위와 며느리 글이 들어가면 부모님이 유독 오래 읽으십니다. 부모님의 형제, 그러니까 이모·삼촌·고모까지 넣으면 한 장이 꽉 찹니다.
- 기념일 일주일 전에 만들어 이틀 전에 마감합니다.가족은 친구보다 느립니다. “주말까지”보다 “토요일 밤 9시까지”가 낫습니다.
- 만든 사람이 먼저 씁니다. 첫 글이 길면 다들 부담스러워하고, 짧으면 다들 짧게 씁니다. 너덧 줄이 적당합니다.
조작 방법은 만드는 법에 있습니다. 가족은 대개 스무 명 안쪽이라 캔버스형이 잘 맞고, 포스트잇 색을 각자 고르면 한 장이 알록달록해집니다.
어린 손주는 이렇게
글을 못 쓰는 손주는 부모가 대신 적습니다. 이름 칸에 손주 이름을 넣고, 아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기세요. “할머니 집 가면 계란말이 해 주세요” 같은 문장은 고치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그림을 그리게 하려면 집 컴퓨터에서 열어 주세요. 그리기는 데스크톱에서만 되고, 펜은 천천히 그으면 굵어지고 빨리 그으면 가늘어져서 아이가 마우스로 그려도 크레파스 느낌이 납니다. 다 그린 뒤에는 꼭 저장 버튼을 눌러야 올라갑니다. 글씨를 막 배운 아이라면 자기 이름만 펜으로 쓰게 해도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삐뚤삐뚤한 글씨를 가장 좋아하십니다.
어버이날, 생신, 결혼기념일, 환갑과 칠순
어버이날은 매년 오니 “올해는 롤링페이퍼”로 한 번 바꿔 보세요. 카네이션과 용돈은 늘 같지만 글은 매년 다릅니다. 생신은 주인공이 한 분이라 문구가 더 개인적으로 갑니다. 결혼기념일은 두 분이 함께 받으시니 “두 분이 우리한테 어떤 부모였는지”로 쓰면 됩니다.
환갑·칠순 잔치가 있다면 롤링페이퍼가 가장 빛나는 순간입니다. 식당 TV 나 빔에 캔버스를 띄워 두고 식사 중간에 한 사람씩 자기 글을 읽어 드리면 잔치 순서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멀어서 못 온 가족의 글도 그 자리에서 읽히니 빠진 사람이 없는 자리가 됩니다. 잔치 전에는 부모님이 못 보시게 하세요. 그날 처음 보셔야 합니다.
쑥스러운 가족이 쓰기 시작하는 요령
부모님께 쓰려고 하면 형제 중 꼭 한 명은 “나 이런 거 못 써”라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세요.
- 두 줄이면 됩니다.길게 쓰라고 하면 안 씁니다. “건강하세요”에 한 줄만 더 붙이면 됩니다.
- 에피소드 하나만 고르세요. 어릴 때 아팠던 밤에 업고 뛰었던 일, 수능 날 도시락, 첫 월급 날 표정. 하나만 떠올리면 문장은 따라 나옵니다.
-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평소 말투로.평소에 반말하는 아들이 갑자기 “어머니께”로 시작하면 부모님이 먼저 웃으십니다.
- 배우자가 먼저 쓰게 하세요. 사위·며느리가 쓴 걸 보면 친자식이 안 쓸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께 쓰는 문구
자녀가
- 엄마, 내가 애 키워 보니까 알겠어. 그때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고맙고 미안해. 오래오래 건강해.
- 아버지 말수가 적으셔서 몰랐는데 제 졸업식 사진 지갑에 넣고 다니신 거 알아요. 저도 아버지 사진 넣고 다녀요.
- 힘들 때마다 전화하면 별말 없이 밥은 먹었냐고 물으시는 게 제일 큰 위로였어요. 이제 제가 물을게요. 밥 드셨어요?
- 매번 받기만 해서 미안해. 올해는 여행 꼭 모시고 갈게. 날짜 비워 둬.
사위·며느리가
- 처음 인사드리던 날 긴장해서 밥도 못 먹었는데, 말없이 반찬 밀어 주셨던 거 기억합니다. 그날부터 편해졌어요.
- 김치 보내 주실 때마다 저희 집 냉장고에서 친정 냄새가 납니다. 늘 감사합니다. 건강 챙기세요.
- ○○ 씨를 이렇게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좋은 사람이랑 삽니다.
손주가
- 할머니 저 이제 혼자 라면 끓여요. 다음에 가면 할머니한테 끓여 드릴게요.
- 할아버지 무릎 아프지 마세요. 제가 빨리 커서 업어 드릴게요.
-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 제일 좋아요. 여름방학에 또 갈게요. 수박 사 놓으세요.
부모님의 형제자매가
- 언니, 우리 어릴 때 언니가 내 몫까지 일 다 해 줬던 거 이제야 말해. 고마웠어. 칠순 축하해.
- 형님, 집안 큰일 있을 때마다 앞에 서 주셔서 동생들이 편했습니다. 이제 좀 내려놓으시고 즐기세요.
- 오빠 환갑이라니 믿기지가 않네. 우리 자주 보자. 올해는 내가 먼저 전화할게.
스마트폰이 어려운 부모님께 전달하기
링크를 보내 드려도 작은 화면에서 포스트잇을 넘겨 가며 읽기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이때는 이미지 저장으로 PNG 한 장을 받아 인화해 드리세요. 사진 인화 앱에 올리면 며칠 안에 집으로 오고, 동네 인쇄소에 맡기면 당일에도 나옵니다.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 드리면 손님 오실 때마다 보여 주십니다. 사이즈와 비율 고르는 기준은 출력·인화하기에 있습니다.
컴퓨터가 있는 집이면 큰 화면으로 한 번 같이 보시고, 인화본은 따로 드리는 게 제일 좋습니다. 화면으로는 다 같이 웃고, 종이는 오래 남습니다.
이런 점은 주의하세요
- 부모님이 계신 가족방에 올리지 마세요. 링크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가족방은 대부분 부모님이 제일 먼저 확인하십니다.
- 완성하면 꼭 저장하세요. 개인이 운영하는 무료 서비스라 영구 보관을 약속드리지 못합니다. 부모님께 드린 글은 몇 년 뒤에 더 소중해지니 PNG 를 가족 모두의 휴대폰에 한 장씩 나눠 두세요.
- 형제 사이 분량을 비교하지 마세요. 누구는 열 줄, 누구는 두 줄이어도 부모님은 누가 안 썼는지만 보십니다. 안 쓴 사람이 없게 하는 게 먼저입니다.
- 오타는 쓴 사람만 고칠 수 있습니다. 같은 휴대폰, 같은 브라우저에서만 자기 글로 인식되니 대신 고쳐 주겠다고 하지 마세요.